당뇨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혈당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왜 혈당이 높아졌는지를 설명하는 병의 기전, 즉 병태생리학적 메커니즘입니다. 1형당뇨는 ‘자가면역 반응’으로 인슐린을 만들 수 없는 상태이고, 2형당뇨는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슐린이 있어도 혈당을 낮추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의 차이를 분자 생물학적 관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치료 방향까지 연결해 설명합니다.
자가면역 반응: 췌장을 공격하는 면역 시스템의 착오
자가면역(autoimmunity)은 면역계가 외부 병원체를 공격하는 대신, 자기 조직을 적으로 인식하고 파괴하는 현상입니다. 1형당뇨에서 면역계는 췌장의 랑게르한스섬 내 β세포(인슐린 생성 세포)를 주된 표적으로 삼습니다.
1. 유전적 소인
HLA-DR3, DR4 유전형은 자가면역 반응 유발 가능성을 높이며, GAD65, IAA, IA-2 등의 자가항체가 확인됩니다. 자가항체는 혈액 내에서도 검출 가능하며, 질병 발병 전부터 존재할 수 있어 선별 진단 지표로도 활용됩니다.
2. 환경적 요인
콕사키바이러스, B형 간염, 로타바이러스 등은 분자모방(molecular mimicry)을 통해 췌장세포와 유사한 구조의 항원을 제공하고, 이로 인해 면역계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게 됩니다. 위생 상태가 지나치게 청결할수록 자가면역 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도 지지됩니다.
3. 면역세포의 작용
주범은 CD8+ 독성 T세포로, 이들은 β세포 표면 항원을 인식하고 직접적인 세포 사멸(apoptosis)을 유도합니다. B세포는 항체 생산, 수지상세포는 항원 제시 역할을 하며, 면역 반응을 증폭시킵니다.
4. 결과: 인슐린 생산 능력 완전 상실
β세포가 80~90% 이상 파괴되면, 혈당 상승이 급격하게 발생하며, 케톤산증(DKA)이 첫 증상일 수 있습니다. 초기부터 인슐린 주사 치료가 유일한 생존 수단이며, 식이요법이나 경구약으로는 조절 불가능합니다.
인슐린 저항성: 인슐린 신호를 무시하는 세포
2형당뇨는 인슐린은 분비되지만, 인체가 이를 무시하는 상태입니다. 즉, 열쇠(인슐린)는 있지만 자물쇠(수용체)가 망가져 있어 문(혈당 이동)이 열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1. 비만과 지방세포
내장지방은 단순한 저장 공간이 아닌, 호르몬 분비 기관(Endocrine organ)입니다. 비만 시, 지방세포에서 TNF-α, IL-6, Resistin 등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분비되어 인슐린 수용체의 인산화(신호전달)를 방해합니다.
2. 근육과 간의 포도당 처리 저하
GLUT4 단백질(포도당 수송체)의 세포막 이동이 저하되어 포도당 흡수가 되지 않습니다. 간은 포도당 신생합성(gluconeogenesis)을 억제해야 하지만, 저항성 상태에서는 오히려 생산을 계속해 고혈당이 심화됩니다.
3. 만성 저염증 상태
2형당뇨 환자의 지방조직은 대식세포(Macrophage)에 의해 염증 반응을 유지합니다. 이로 인해 인슐린 수용체 관련 단백질(IRS-1, PI3K)의 활성이 억제되고, 당 처리 능력이 점점 떨어집니다.
4. 대사 기억(Metabolic memory)
일시적인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 세포는 기억처럼 ‘저항성’을 학습하고, 나중에는 체중을 줄이더라도 원래의 민감도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커니즘 비교 요약
항목 | 자가면역 (1형당뇨) | 인슐린 저항성 (2형당뇨) |
---|---|---|
주요 원인 | 자가면역 반응 | 대사성 염증, 비만 |
인슐린 생성 | 없음 | 존재하나 효과 감소 |
병리 중심 | β세포 파괴 | 수용체 신호전달 억제 |
발병 속도 | 빠름 (수일~수개월) | 느림 (수년) |
치료 접근 | 인슐린 주사만 가능 | 약물 + 생활습관 변화 |
조기 진단 | 자가항체 검사 | 공복혈당, HbA1c, C펩타이드 |
치료 전략: 병리 기전에 맞춘 접근
1형당뇨 대응
- 면역조절 치료: anti-CD3 항체, 자가면역 백신 등 임상 진행 중
- 기기 활용: CGM, 스마트 펌프 등 자동화 기기 사용으로 혈당 안정화
- 자가관리 능력 필수: 탄수화물 계산, 혈당 로그, 스트레스 관리 등 포함
2형당뇨 대응
- 생활습관 교정: 체중 감량, 저탄수화물 식이, 꾸준한 운동
- 주요 약물군:
- Metformin: 간 포도당 생성 억제
- SGLT2 억제제: 신장에서 포도당 배출
- GLP-1 작용제: 인슐린 분비 증가, 체중 감소
- 조기 치료 시 관해 가능: 인슐린 사용 없이도 혈당 정상화 가능
결론: 같은 혈당, 다른 질환. 정확한 이해가 치료의 시작
당뇨병이라는 같은 진단명 아래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질병의 길이 숨어 있습니다. 1형당뇨는 내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면역계의 오작동, 2형당뇨는 환경과 습관이 만든 대사 기능의 피로입니다. 이 병의 ‘기원’을 이해하지 못하면, 식단도, 약도, 운동도 모두 방향을 잃게 됩니다.
✅ 혈당 조절이 목표라면 ‘수치’를 보되,
✅ 건강 회복이 목표라면 ‘원인’을 봐야 합니다.
두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단순한 혈당 수치 관리에서 벗어나 맞춤형, 근본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